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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식집사 2주차의 하루

사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식집사가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아 루틴이랄 것이 없다. 그나마 반강제적으로라도 매일 하는 일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스트레칭을 한다. 해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베란다 창문 가까이에 두고 습도가 높은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끼리 모아준 뒤 분무기로 물을 여러 각도로 뿌려준다. 물 한 잔과 프로바이오틱스를 먹고 어젯밤에 준비해둔 옷을 입고 출근한다. 공항철도와 9호선에서 사람들에 찡겨가며 키우고 있는 식물들의 관리법(햇빛, 물, 비료 등의 양)과 번식 방법을 검색하거나 금손들이 키워낸 대품을 보여 나의 유묘들도 저렇게 크길 기도한다.

커피 없이는 맨정신으로 업무를 진행할 수 없으므로 출근 후 바로 커피를 사러 간다. 코로나 전엔 사서 오는 길에 다 마셔버리기도 했는데 요즘엔 눈치 보면서 주위에 사람이 없을 때 한 모금만 마시거나 혹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로 들고 올라온다. 아늑한 파티션과 모니터 뒤에 숨어 커피를 마신 후 업무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엔 `[지명] 존맛` 이렇게 검색해서 광고를 피해 진짜 맛집을 찾아다닌다. 비 오는 날엔 회사 식당을 애용한다! 식사 후 남는 시간엔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업무 중간중간 요즘 추워진 날씨 탓에 아이들이 얼어 죽진 않을까, 과습에 약한 아이의 흙이 아직도 젖어있을까 걱정한다. 야근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오후 업무를 마치고 칼퇴!(+10~20분)

퇴근 후 집에 오면 그 전주 주말에 미리 짜둔 식단에 따라 남편과 합심하여 타타타 저녁을 준비해 먹는다. 식물들에게도 물을 주고 멍하니 쳐다본다. 요즘 캠핑과 불멍이 대세라면 우리 집은 식멍이 대세다! 어쩔 땐 한 시간 정도 지나있을 때도 있다. 내 취향에 맞는 아가들이 제각각의 매력을 뽐내며 고슬고슬한 흙에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기도 하고, 왠지 모를 책임감도 느껴진다. 이 아이들은 과거의 다육이들처럼 보내지 않기 위해 매일 검색도 하고 생전 처음 식물 카페에 가입해 질문 글도 남긴다.

잘 준비를 꽤 길게 하는 편인데, 샤워를 마친 뒤 로션을 바르고 화장대 앞에 앉아있으면 남편이 머리를 말려주고 에센스를 발라준다. 내일 입을 옷도 챙기고 밀린 약도 챙겨 먹고 남편이랑 서로 잔소리하다 보면 한 시간은 우습다. 자기 전엔 추위에 약한 식물들을 베란다 쪽 거실에 두고 습도가 중요한 식물들 옆에 가습기를 틀어준다. 내일 식물들이 얼마나 자랐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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